스물 이후의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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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연재소설 4

연재소설_젊음의 기원_08_임시지휘부_87년 12월 16일 오후 6시

임시지휘부 - 12월 16일 오후 6시 12월의 중순의 석양이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침몰하고 있었다. 광장의 거친 아스팔트 위에서 마지막 입김처럼 머물던 한 줌의 햇볕은 어둠이 날름 삼켜버렸고 차갑고 세찬 겨울바람은 낮게 깔리며 군중들의 발목을 할퀴고 지나갔다. 무채색의 두려움이 닥쳐오고 있다는 것을 무의식으로 감지하면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저마다 두터운 외투 속에 한 자락의 온기와 한 줌의 기대를 품고 있었지만, 가슴속 어딘가에는 저마다의 분노를 숨긴 채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남녀노소를 가리 않고 검고 흰 머리채들이 인파를 형성하며 자유롭게 유영하는 과장. 간헐적으로 목청껏 터져 나오는 누군가의 절규나 외침은 수직으로 공명하며 모두의 머리 위에서 잠시 부유하다 ..

연재소설_젊음의 기원_07_인연_87년 12월 16일 오후 5시 30분

7. 인연_12월 16일 오후 5시 30분 시위 진압 현장에 투입된 전투경찰들은 늘 배가 고팠다. 불규칙한 식사 횟수 때문이었다. 물론 시위대와 맞붙어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시간만 피한다면 어김없이 삼시 세 끼를 챙겨 먹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들도 시위 현장에서 먹는 짬밥은 맛이 없고 소화도 잘 되지 않았다. 전경들은 사시사철 길바닥에서 밥을 먹어야 했고 길을 지나는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바깥의 기온 변화와 불현듯 닥쳐오는 궂은 날씨에도 정권의 안위만을 보위하기 위해 차출된 이 나라의 청년들은 들짐승처럼 묵묵하게 주어진 현실을 버텨가야 하는 처지였다. 군기반장 철만이 속한 백골단 역시 전투경찰들과 다르지 않았다. 일반인 신분의 용병 아저씨들을 뺀 모든 현역 복무자들은 전경이든 ..

연재소설_젊음의 기원_03_피맛골_87년 12월 16일 오전 11시

3. 피맛골 - 12월 16일 오전 11시 민사독과 신수미 기자는 해장술로 하루를 시작했다. 일명 피맛골로 불리는 서울 도심의 광화문 교보문고 뒷골목 노포인 구석집 안에는 오롯이 단 둘 뿐이었다. 평소 같으면 이른 점심을 해결하는 직장인들로 북새통일 테지만, 대통령 선거가 있는 공휴일이라 한산한 분위기였다. 두 사람 모두 조금 전까지 종로 사우나에서 약간의 단잠을 청하고 땀도 좀 빼고 나온 터라 얼굴에 해맑은 광채가 감돌았다. 그렇게 그들은 막걸리 두 주전자를 막 비우고 있었다. 선지해장국을 담은 뚝배기가 차갑게 식어갈 즈음 민사독 기자의 낯빛은 벌겋고 불콰하게 달아 올랐다. 옆구리가 사정없이 패인 낡은 양은 주전자가 양재기 잔에 탁주를 탈탈 토해 내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후배인 신수미 기자가 먼저 자..

소설/장편소설 2025.04.09

연재소설_젊음의 기원_01_J신문사 편집국_87년 12월 16일 오전 6시

젊음의 기원 1987년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 서울의 구로구청에서 벌어진 2박 3일간의 반독재 청춘 누아르! 사회 곳곳에 넓고 깊게 침투한 군부독재의 밀정들과 학생운동 비밀 조직 사이의 숨 막히는 혈투와 비극의 서정! 1. J신문사 편집국_1987년 12월 16일 오전 6시 TV에서 오전 6시 정각을 알리는 시보 소리가 울리자 남자 앵커의 얼굴이 화면 가득 나타났다.“제13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국민투표가 지금 막 시작됐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지난 1980년 이후 7년 만에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투표로 선출하는 직선제 선거입니다.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후보 간 4자 격돌이 예상되는 가운데 누가 당선될지는..

소설/장편소설 202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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