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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작권/바보들은 성공 직전에 멈춘다

김형수 출간도서_바보들은 성공 직전에 멈춘다_02. 성공 전도사들의 탄생과 악영향

형수오빠 2024. 9. 29. 04:47

2. 성공 전도사들의 탄생과 악영향

 

<아들에게 보낸 편지>로 유명한 영국의 필립 체스터필드가 1,774년에 영국식 성공론을 주창하기 시작한 것은 세르반테스의 시대보다 2백 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필립은 상류사회 출신으로 백작 작위를 물려받고 국왕과 인척이기도 했습니다. ‘교육을 통한 성공론’을 주창해 영국 상류계급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성공론자였지요.

필립과 동시대를 살았던 미국의 성공론자는 피뢰침과 다초점 렌즈의 발명가로 알려진 벤자민 프랭클린입니다. 그는 다분히 ‘계몽주의적인 성공론’을 주창했는데 그 영향은 아브라함 링컨에게까지 영향을 주게 됩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스스로 실천해 온 성공하는 인생의 원칙들을 13 가지 덕목으로 제시하며 우민계몽에 앞장선 정치가이기도 했습니다. 절제, 침묵, 질서, 결단, 절약, 근면, 진실, 정의, 중용, 청결, 침착, 순결, 겸손의 13가지 가치를 대중적으로 설파하면서 무엇보다도 ‘근면’을 강조한 그는 미국의 건국에 이바지하게 됩니다. 이때까지만 해 도 성공이란 다분히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었지요.

1800년대 중반이 되서야 미국에서는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와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의 성공사례가 규범이 되는 '비즈니스적 성공론'이 출현하게 됩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앤드류),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에디슨), 세르반테스가 얘기한 ‘자기 운명 속에 내재된 성공의 요소’를 잘 계발하면서(앤드류-에디슨), ‘실패를 통해’ 딛고 일어서며(앤드류-에디슨), 당대 최대의 사업가로서(앤드류), 당대 최고의 발명가로서(에디슨),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니까요.

1900년대에 와서는 미국 최초의 직업적 ‘성공 전도사’가 출현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데일 카네기입니다. 데일은 사범대를 나와 교사를 하다가 세일즈맨을 거치면서 당대의 위인들에게서 성공의 경험과 규범들을 사례 중심으로 발굴하고 체계화해 그 콘텐츠를 대중화하는 데 앞장선 최초의 전문가였습니다. 데일 카네기의 책들은 오늘날 한국에서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올라 있고 대학에서도 커리큘럼화 될 정도이고 그의 이름을 딴 카네기연구소는 다양한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성공학(成功學)과 관련한 최초의 학문적 성과는 데일 카네기와 동시대를 살았고 그보다 15년을 더 살았던 나폴레온 힐의 등장으로 시작됩니다(데일은 1955년, 나폴레온은 1970년 사망). 어려서부터 작가의 꿈을 지녔던 나폴레온 힐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 대학공부를 하던 중 생계가 막막해 지자 한 잡지사 기자로 취직을 하게 됩니다. 기자로서 현장을 누비던 그는 당대 최고의 부자였던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를 만나게 되는 행운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와의 독특한 인연을 유지하면서 그의 유지를 받드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도맡아 진행하게 되죠.

1908년부터 1928년까지 장장 20년에 걸쳐 진행된 프로젝트는 인류 최초로 ‘성공원리를 체계화’해 내는 일이었습니다. 그 프로젝트를 위해 앤드류 카네기는 나폴레온 힐에게 자신의 <비밀수첩>에 적힌 507명의 명단을 전격 공개합니다. 그 안에 적힌 사람들은 당시 각계각층에서 널리 알려진 상류층,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폴레온 힐은 그 명단에 적힌 사람들을 한 사람씩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사에 대해 정밀취재를 하게 됩니다.

‘성공한 이유와 과정’은 물론 ‘실패의 과정과 극복계기’ 등속에 관한 밀착 인터뷰와 조사는 507명 각 개인사를 20년 동안 추적하며 진행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1928년에 출판된 <성공의 법칙 The Law of Success>이었습니다. 그 연구 결과가 논문으로 발표 된지 5년 뒤인 1937년에는 ‘대중적 보급판’(일반인을 위한 다이제스트 판 서적)이 출판됩니다. 이 책은 5천 만부나 팔려 나가면서 그 책을 통해 미국식 성공학은 이제 전 세계로 널리 확산되기에 이릅니다.

나폴레온 힐의 이론적 성과는 자칭 성공 전도사를 자처하는 데일 카네기와 그의 계승자들에게 아주 강력한 마이크를 달아주는 것이었습니다. “507명이나 되는 성공한 인물들을 보십시오. 당신도 이들 가운데 한 명이 될 수 있습니 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성공론을 설파하는 성공 전도사 그룹은 어김없이 ‘성공에 이르기 위한 실패의 관문’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논리로 무장한 채 대중들에게 ‘변화’를 부르짖게 됩니다.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하라. 현재에 머물러 있지 말고 변화하라.’ 등속의 메시지를 통해 대중들이 성공을 위한 인간형으로 개조되기를, 학문적 성과를 기반으로 이제 당당히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나폴레온 힐이 세상을 떠난 후, 미국 사회는 고전적 성공론의 미풍이 잦아들고 ‘변화론’의 바람이 불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긍정론’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죠.

경쟁 사회에서 도태되거나 급변하는 사회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된 미국인들은 고작 1%만 성공할 수밖에 없는 ‘고전적 성공론’에 의지하기 보다는 현실의 고통을 위로받고 담담하게 수용하면서도 신자유주의 시대의 변화된 상황을 헤쳐 나아갈 현실적 동기가 필요했습니다.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와 같은 책은 ‘변화하는 세상’을 주목하면서 살 것을 요구합니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열광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 열풍’은 미국 사회 내의 불평등 구조의 심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사회적으로 도태되어 가는 계층을 강타합니다.

“그대들의 처지가 그렇게 보잘 것 없는 이유는 변화를 준비하지 않는 태도를 갖고 살았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경각심을 부채질합니다.

그러나 이는 기업의 구조조정과 노동의 유연화 정책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그 원인을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하게 됩니다. 20세기말에 급속히 미국 사회를 전염시킨 미국식 ‘긍정론’ 역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살아가야 하는 미국인들을 겨냥한 기독교의 교회부흥 마케팅의 일환으로 시작된 캠페인이었습니다.

유니티를 중심으로 불어 닥친 ‘긍정신학’의 바람을 타고 조엘 오스틴 같은 스타 목사들이 마케팅의 선두에 섭니다. <긍정의 힘>이란 그의 저서는 사실 내용적으로 보면 성공과 자기 계발의 사례들이 이스트와 혼합되어 반죽된 상태입니다. 앞 뒤 문단을 서로 바꿔 놓아도 가독성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 이야기 반죽은 오븐에 넣었다가 빼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례집’ 같은 기독교판 성공론인 것입니다. 그들은 원죄와 구원이라는 기독교의 근본주의를 수정하고 교회의 강단을 세련된 무대로 장식해 신도들과 신(God)의 관계를 ‘신도’와 ‘스타목사’의 관계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스타목사는 항상 신도들의 현실적 생활과 아픔을 위로하면서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라!”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이것이야 말로 과거 루터가 했던 종교혁명 이전의 시대로 되돌리는 이데올로기의 재현 현상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겪는 현실의 고통을 보면서 그 원인을 ‘직시’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지혜’를 구하고자 ‘행동’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스타목사의 입에서 신도들에게 이런 식으로 전해집니다. “현실을 보고, 지혜를 구하고, 행동으로 극복한다는 이성주의는 오로지 개인의 사적인 영역 안에서만 필요한 것이지,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현실의 고통을 긍정함으로 인해 그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철학적으로 관조적이괴 관념론적인 이러한 긍정의 논리는 결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긍정론에 빠진 기독교 신앙인들은 그렇게 평생을 ‘수긍’하고 ‘체념’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나와 이웃의 고통에 사회적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이 아닌 것인 양 이해됩니다.

문제는 이런 미국식 성공론이 한국 사회에서 있는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서 본격화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미국 내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급속도로 해체해 가며 고용불안을 가중시킵니다. 잭 웰치 같은 고용 헌터들은 주주의 이익을 보존하고 증대하기 위해 기업의 순이익을 남기는 데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기업 경영을 투명화 하고 이익을 분배하는 데 열중하는 대신 비용을 줄이는 정책을 폄으로써 이른바 살인적 ‘구조조정안’을 채택하고 그걸 근거로 수많은 노동자들을 실업자로 내몰아 버립니다. ‘강한 미국’을 표방하며 시작된 레이거노믹스는 복지예산과 환경예산의 축소와 각종 세금 감면 정책을 통한 시장의 활성화는 물론 금융자본의 글로벌 네트워크화를 꾀했지만, 그로 인해 기대했던 금융자본국가로서의 기생적 부후화 현상은 결국 미국 내의 1% 특권층만 더욱 살찌우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 99%의 대다수 미국인들의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는 게 없이 피폐해질 뿐이었습니다. 이런 시대 상황과 영합한 긍정론과 변화론은 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전염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미국식 성공론, 변화론, 긍정론은 신자유주의의 식민으로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도 지난 20년 간 꾸준히 커다란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지난 90년대부터 한국의 서점가에는 성공과 자기계발 분야의 서적들이 평대를 넓혀 갔습니다. 그 분야의 책들이 문학 분야를 제치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의 고지에 올라 초대박 밀리언셀러의 판매고를 올리는 진기록이 20년 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대부분의 책들이 미국에서 출판된 영어판 원서를 수입해 번역 출판한 책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식 성공론, 변화론, 긍정론을 무분별하게 수입해 와서 상업 출판의 영역을 넓히는데 급급했던 에이전시들과 출판사들은 ‘자기계발서’를 ‘금맥’으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이미 오래 전의 베스트셀러지만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 잭 웰치의 <위대한 승리> 등속은 전형적인 미국식 변화론과 성공론을 대변하는 책들이었습니다. 2005년부터는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을 필두로 ‘긍정 신드롬’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한 때는 일본의 긍정론인 <아침형 인간> 신드롬까지 한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바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미국식(일본식) 신자유주의의 식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읽고 생각하는 기준을 제공하는 책들은 대부분이 미국과 일본의 저작권 표시가 된 번역본이 대부분입니다.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갈 우리 한국의 젊은이들이 미국식 성공론과 변화론과 긍정론에 길들여지면서도 여전히 삼포세대를 벗어날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식민스타일이 주는 모순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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