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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출간도서_바보들은 성공 직전에 멈춘다_03.성공하는 인간형은 따로 있는 건가

형수오빠 2024. 10. 4. 02:38

3. 성공하는 인간형은 따로 있는 건가

 

1616년 4월 23일은 역사적으로 매우 독특한 의미를 지닌 날입니다. 그날은 세계문학사의 양대 별이 1시간 간격으로 세상을 떠난 날이기 때문입니다. 당대의 위대한 극작가인 영국의 세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난 날이요, 스페인의 위대한 소설가 세르반테스가 생을 마감한 날입니다. 

그 후 인류 역사가 4백 년이나 흐르는 동안, 이 두 작가의 운명은 서로 대조적인 캐릭터로 인간사에 기억됩니다. 세익스피어를 대표하는 작품의 주인공 햄릿은 ‘우유부단한 인간형’의 대명사가 되어 근대의 성공론에서는 '결코 닮지 말아야 할' 캐릭터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반면 세르반테스를 대표하는 작품의 주인공 돈키호테는 ‘저돌적인 인간형’의 대명사가 되어 근대 성공학의 대표적인 캐릭터로 추앙을 받게 됩니다.

오늘 날 수많은 성공 전도사들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실패를 딛고 나아가는 돌진형 인간’의 표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들은 강의를 할 때마다 햄릿과 같이 우유부단하고 비극적인 인간형에서 벗어 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성공에 관한 캐릭터 이미지의 해석들은 이후 영국과 미국 등 선진 국가들의 자본주의적 성공론으로 꽃피우며 한국, 일본, 중국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의 전후 베이비 붐 세대에게는 발명왕 에디슨의 캐릭터 이미지가 전파되어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 바 있습니다. 그 당시 세대치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였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이후 근대 교육을 받아 온 세대에게는 그 슬로건이 정언 명령처럼 여겨졌습니다.

일본에서는 그런 발명왕 에디슨의 캐릭터 이미지가 ‘실패는 성공의 근본’이라는 슬로건으로 확산된 바 있습니다. 우리 영토와 민족을 짓밟고 유린했던 일본이 연합군에 의해 패망한 후, 군국주의와 결합한 사무라이 문화를 밀어 내고 전후 복구 재건 부흥사회 건설의 정신적 모토로 작용하게 한 된 것이 '실패는 성공의 근본'이라는 슬로건이었던 것입니다. 한편 중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성공의 맛을 보기 위해선 실패의 맛을 알아야 한다.’는 민간 속담이 있어 왔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어떤 일에 도전해서 실패를 겪다보면, 

즉 우유부단한 햄릿형 성격을 버리고

보다 적극적이며 실행적인 돈키호테 같은 성격으로 노력하다 보면,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성공할 날이 꼭 오겠지?”라는 생각입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할수록

대부분의 성공 전도사들은

‘그야 물론이지!’라고 답해 왔습니다. 

그럼 우린 이런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왜 똑같이 도전하고 실패하면서도

성공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한가요?

대다수는 왜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죠?”

지금까지의 성공 전도사들은 이 질문에 대해 

만족스러운 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질문의 본질을 피해가기에 급급하여 

새로운 주제로 국면을 전환을 꾀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결 같이 주창합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변화’가 필요한 거야!"라면서

성공하려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과거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한 말을 강조합니다.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변화시켜 낼 수 있어야, 그런 변화의 노력 속에서만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들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살아 가는 사람들!

우리들은 어떤 일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더욱 더 분발하고 또 뼈를 깎는 변화의 노력을 경주하게 되지만 결국 그 의문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도 끝도 없이 우릴 괴롭히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린 왜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하는 1%에 들지 못하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