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관계의 승부수, 권모술
세상이 어지럽다. 이른바 난세다. 중국 대륙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신(神)’을 인정하고, 신에 종속된 존재로 인간을 생각하던 시대에서 ‘인간’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변화의 시기부터 이른바 '난세'가 시작된다. ‘신의 자리를 인간’이 대신하고, ‘신’ 중심으로 인간사를 바라보던 관점에서 ‘인간’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변화의 시기, 인간은 누구이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길(道)’을 찾아 나선 때가 바로 난세의 시작이었다.
공자는 그 길을 인의예지(仁義禮智)로 풀었고 맹자는 인(仁)과 의(義)로 풀었으며 한비자는 법치주의( 法治主義)로 풀어갔다. 그 사이 넓은 중국 대륙은 군웅할거의 춘추전국시대를 통과한다.
난세에는 권력이 있는 자는 권력으로, 돈이 있는 자는 돈으로, 지략이 있는 자는 지혜로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의 처지에 따라서 최강의 무기를 갈고닦아 스스로를 지켜가야 했다.
결국 난세를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지켜가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결국 난세를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지켜가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갔던 위인들의 지혜이다. 그 가운데 ‘권모술(權謀術)’이 있다. 권모(權謀)란 처한 상황을 타개해 나가기 위한 최선의 ‘계책’이나 ‘방법’을 말한다. 술수(術數)란 그 실행코드이다. 한 마디로 난관을 지혜로 풀어나가는 것이다. 상대와의 관계에서는 지혜로 승부를 겨루는 것이다. 지혜만이 돈과 힘이라는 강적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길(道)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지키는 핵심 비책
권모술수라 하면 아마도 사람들은 먼저 음흉함․어두움․사악함 따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사실 권모술수는 교활하게 사람을 속이는 모략,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지배의 속임수 등등의 개념으로 요약되어 왔었다. 그 때문에 권모술수를 생활의 지혜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실로 엉뚱한 오해에 불과하다.
비유하자면 요리에 쓰는 식칼이 살인의 도구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시 말해 식칼이 어쩌다 살인에 사용되었다고 해서 취사용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권모술수는 본래 복잡한 대인 관계를 원만히 하기 위한 지혜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걸 나쁜 일에 이용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대개는 지략을 쓴다고 하면 나쁜 의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한민국 포탈 네이버 사전에 있는 고사성어 ‘권모술수’를 검색해 보아도 개념 설명은 매우 부정적이다. 학교 국어 시간에 배우는 ‘권모술수’란 단어 역시 대개는 음흉한 술수로 지략을 나쁜 용도로 사용하는 자들의 술수로 설명하고 있다.
① 권모술수는 2천 수백 년 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라고 일컬어지는 대격변기에 발달한 인간관계의 기법이었다.
② 핵심은 자기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상대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권모술수의 본래 의미는
자기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상대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서양의 행동경제학 넛지 이론과 같다.
마치 서양의 행동경제학에서 탄생한 넛지 이론과 비슷하다. 물론 넛지 이론보다는 권모술수가 더욱 더 사람을 조종하고 움직이는 힘이 강하다. 여기서 소개하는 재밌는 이야기들을 통해 여러분은 그걸 확인할 수 있다.
위급할 땐 시간이 금, 시간을 벌라
기원전 625년 10월, 초(楚)나라 도읍 영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모반자는 태자 상신이었다. 성왕은 상신을 태자로 삼긴 했으나 신뢰감이 낮았다. 그래서 상신의 이복동생인 자직으로 태자를 삼으려 했다. 그러나 이를 눈치 챈 상신이 선수를 쳐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상신은 근위병을 이끌고 궁전에 난입하여 성왕을 에워쌌다. 이 시대는 주군이든 친부이든 피투성이 배신이 다반사로 행해졌다.
"기다려 달라."
이제는 틀렸다고 생각한 성왕이 저항을 중지했다. 그리고 권모술을 발휘한다.
"죽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인 웅장(熊掌)을(熊掌) 먹고 싶구나.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먹게 해다오!"
상신은 생각에 잠겼다. 웅장을 먹게 한 뒤 죽게 한다면 혜량 깊은 군주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상신은 이내 곧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성왕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어서 자해(自害)를…….!"
성왕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마침내 그는 스스로 목을 매어야 했다.
이 일절은 고대 중국의 역사서 <좌전>, <사기> 등에 실려 있다. 그 외에도 정치사상서인 <한비자>에 기록되어 있는데 원문은 극히 간결하다. 마지막 대목을 한비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성왕, 웅번을 먹고 죽겠다 했으나 허락되지 않아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심코 읽는다면 '죽는 마당에서도 먹을 것을 찾는 한낱 미련 많은 왕의 말로'를 보는 것 같다고 넘겨 버리기 쉬운 대목인데, 이것이야 말로 성왕이 마지막 순간 목숨을 건 권모술수였던 것이다. 그 열쇠는 웅번, 즉 현대의 중국 요리로 유명한 웅장이었다. 이 요리는 본래 중국 3대 명채의 하나로,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요리로 유명하다. 재료는 곰의 발바닥이다. 진흙으로 싸서 불에 태우면 털이 흙과 함께 제거된다. 이것을 몇 번이고 물을 갈아가며 삶는다. 그리고 한약을 넣고 이중 뚜껑의 냄비에 넣고 졸인다. 어쨌든 한 번 주문하면 적어도 사흘은 걸리는 요리인 것이다.
위기에 처하거든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라
요컨대 성왕은 사흘 동안의 시간을 얻으려고 한 것이었다. 그동안에 어떻게든 손을 쓰자, 혹시 밖으로부터 원조나 진압군의 움직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살려 달라'고 한다면 상대는 죽일 생각으로 습격해 올 것이므로 살려 줄 리가 없다. '기다려 달라' 해도 마찬가지다. 저항하더라도 이길 가망이 없다. 그래서 극히 자연스럽게 상대가 그것을 눈치채는 일 없이 시간을 벌겠다고, 순간적으로 '웅번을 먹고 싶다'는 계책의 말이 입에서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곧 의도를 간파하였으므로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성왕청식웅번이사'라는 여덟 글자 속에 숨어 있는 지략, 이것이 이른바 권모술수의 한 원형인 것이다.
이런 지략은 생존을 위한 끈기이자 지혜이다. 필사적인 몸부림 따위의 극한 행동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여유와 배짱이 있는 행동에서 나오는 것이다. 시간을 번다. 어떻게든 여유를 되찾는다. 이를 위해 온갖 조건을 활용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마치 식칼을 살인의 도구로 사용하듯
내란을 저지른 주범들이
권모술수를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
재판을 지연시키고 온갖 시간을 끌며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략에 맞서
정의를 추구하는 자의 입장에서도
권모술을 쓸 필요가 있다.
명분을 방패로 삼는 법
초나라 성왕이 쿠데타로 죽고 약 2백50년이 지났다. 이때까지 재위 21년 동안 혁신 정치를 성공시킨 도왕의 시대가 펼쳐졌다. 도왕은 초나라는 국력을 크게 신장했는데, 북으로는 진과 채 두 나라를 병탄(倂呑)했고, 다시 침공해 온 조․위․한 연합군을 무찔렀으며, 또 서쪽의 강대국인 진나라의 위협에 대항해 국경선을 굳건히 지켰다.
이는 도왕의 충신 오기의 공적이었다. 전국시대의 인물 오기는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손자와 어깨를 겨루는 병법자일 뿐 아니라 정치가로서 뛰어난 식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병법서 <오자>는 <손자>에 비해 내정의 실무 쪽에 두어져 있다.
당시의 중국은 노예를 소유한 귀족들이 실권을 쥐고 있어 왕은 그 대표자로서 권위를 지킬 수 있었다. 이에 대해 귀족의 권력을 누르고 중앙 집권을 강화시켜 국력의 증진을 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일파가 있었는데, 이들이 법가였다. 법가의 주장을 재빨리 받아들여 국력을 강화시킨 것이 초나라의 이웃 나라인 진나라였는데, 뒷날 진시황제 때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바탕 역시 이 때문이었다.
도왕의 충신 오기는 법가 사상의 실천가였다. 그는 진나라 못지않게 초나라에서 법가를 도입하려고 했고 혁신 정책을 단행해 도왕의 신임을 얻었다. 이를테면 왕족의 세습 재산을 3대에 국한해 몰수한다던가, 그들에게 변경의 개발을 명하던가 하였다. 이러한 혁신 정책을 시행한 결과 초나라의 국력은 차츰 강대해졌지만, 그 때문에 오기는 왕족들의 반감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 무렵 도왕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고 왕이 죽은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건만, 도읍에는 불온한 공기가 감돌았다. 그날 오기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궁에서 재상으로서의 정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돌연 궁문 근처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무장한 반란세력이 궁으로 난입해 들어왔다. 그 선두에 선 것은 바로 혁신 정책을 반대해 오던 왕족들이었다.
오기는 순간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기지를 발휘해 자기 방을 뛰쳐나갔으나 달아날 방법이 없었다. 그를 발견한 암살자들은 맹렬히 화살을 쏘아댔다. 오기는 죽은 도왕의 시신이 있는 내실로 뛰어 들어갔다. 장례가 치러지기 전이라 왕의 유해는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등 뒤에 발소리와 활시위 당기는 소리를 들으면서 오기는 왕의 유해 위에 엎드렸다. 암살자들은 왕의 유해를 개의치 않고 계속 화살을 날렸다. 고슴도치 마냥 화살을 맞은 오기는 마침내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에 오기의 계산이 있었던 것을 왕족들은 몰랐다. <사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오기는 도망쳐 왕의 유해에 엎드렸다.
그래도 화살은 계속 날아와
오기를 죽이고는 도왕의 시신에까지 박혔다.'
결국 왕족들은 왕의 옥체에 화살을 쏜
반역의 무리가 되고 말았다.
훗날 도왕의 아들 숙왕은 즉위식이 끝나자 선왕의 시신에 화살을 쏜 왕족들을 남김없이 붙잡아 주살했다. 그 본인 뿐 아니라 일가친척이 모두 연좌됨으로써 70여 가문이 대가 끊겼다. 오기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원수를 갚을 준비를 해두었던 것이다. 자기가 손을 쓰지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게끔 시한 장치를 만든 셈이다. 이런 지략을 가진 오기가 어째서 반란의 음모를 사전에 눈치채지 못했을까 하는 논의는 후일담에 불과하다. 여기서 우리는 웅장을 주문한 성왕과 똑같은 오기의 권모술을 발견하게 된다.
모함한 자를 밝히는 법
기원전 4세기, 싸움이 치열한 전국시대에 권모술수의 대가로 활약한 소진의 이름은 우리들에게도 낯이 익다. 합종연형(合從連衡:중국 전국시대의 최강국인 진(秦)과 연(燕)·제(齊)·초(楚)·한(韓)·위(魏)·조(趙)의 6국 사이의 외교 전술)으로 활약한 그는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꼬리가 되지 말라'고 말하여 약소국의 군주를 격려한 이야기로 유명하다.
소진은 여러 나라를 방랑하며 강대국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발걸음을 멈춘 곳이 제나라였다. 제나라는 오늘날의 산등성 일대의 바다를 낀 풍요롭고 역사가 깊은 대국이었다. 여기서 소진은 장관격의 고문인 객경의 대접을 받았다. 당시는 오늘날보다 인재 교류가 활발해 타국인이라 할지라도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으며, 수 개국의 장관을 겸임하는 경우도 많았다.
여러 나라의 실정에 밝은 소진은 곧 왕의 신임을 얻게 되어 정사를 논할만한 상대가 되었다. 그러자 제나라의 고관들은 이를 눈엣가시로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진은 괴한에게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게 된다. 그를 시기한 어느 고관의 자객일 것이라고 추측되었지만, 범인은 자취 감추었고 잡을 도리도 없었다.
소진의 병세는 악화되고, 명줄은 촉각을 다투게 되었다. 병문안을 온 왕에게 임종 직전의 소진이 말했다.
"자객을 찾아낼 방법이 있습니다. 써 주시겠습니까?"
"어서 말해 보시오."
"제가 죽거든 '소진은 연나라 스파이였음이 판명되었다'고 공표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저의 시체를 거열(車裂)의 형(形)에 처하고 거리에 효시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반드시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죽거든
연나라의 스파이였다고 공표해 주십시오.
그럼 저를 습격한 자가
왕에게 큰 상을 받을 거라 생각하여
제 발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윽고 소진은 숨을 거두었다. 왕이 그 유언대로 했더니 과연 범인이 자청해서 나타났다. 범인은 자신이 스파이를 죽인 공로로 왕에게 큰 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왕은 즉각 그 사나이를 체포했고 처형했다. 이처럼 소진은 사후의 원격 조작으로 범인을 체포하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후일담이 있다. 소진이 사실 연나라의 스파이였으며, 연나라를 위해서 제나라를 피폐화시키려고 손을 썼다는 것이다. 소진이 고관의 시기를 방지하지 못했던 것은 그의 권모술수의 한계였던 것으로, 그것은 일단 덮어두기로 하자. 상대의 심리를 활용하여 스스로 나와 이쪽의 의도에 따르도록 한다는 점이 포인트인 것이다. 성왕과 오기와 소진, 이 세 사람 사이엔 별 연관성이 없다. 입장도 사고방식도 매우 다르다. 그러면서도 그 발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거기서 권모술수의 원류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상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법
권모술수에 명확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자로 볼 때 권(權)이란 원래 저울의 의미로 계책이 되었다. 모(謀)와 술(術)은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의미와 같다. 그리고 수(數)는 센다는 의미로서 '도모한다', '책략'의 의미로 확대되었다. 그것은 우선 앞길을 아는 일, 상대를 헤아리는 일부터 시작된다. 한대의 책인 <설원(說苑)>은 유학자의 입장에서 온갖 일화를 모은 것인데, 그 속에 권모라는 일장(一章)이 있다.
그 책에서 말하는 ‘권모’는 사전의 계략, 선견지명을 말한다.
① 미지의 것을 앞서 아는 것이 권모술수의 첫 착수 단계라는 것이다.
② 첫 판단에 의거하여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끔 전개시키는 것이다.
③ 결국 사람들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가 있으면 된다. 단, 이 경우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여 강요한다면 의미가 없다. 상대가 자발적으로 움직이게끔 유도하는 것이 방법이다.
④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열쇠는 상대의 심리 파악에 있다. 상대의 심리를 읽고 그 흐름에 대응하여 처신하면 된다.
앞서 소진의 경우, 범인에게 ‘자수하라’고 명령을 한다 해도,, 나타날 턱이 없었다. 수사를 하더라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그대가 죽인 소진은 본래 타국의 스파이였네'라고 만천하에 포고함으로써 범인을 쉽게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트릭이지만, 꼭 속인다는 데 주안점이 있는 게 아니라, 상대의 심리를 활용한다는 점에 열쇠가 있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결코 특수한 것이 아니며 일상생활의 인간관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한 유명한 CEO가 있다고 하자. 그는 인간관계의 달인이기도 하다. 그는 직원들에게 결코 강요하거나 명령하는 일이 거의 없다. 또 그 어떤 사람의 의견도 절대 반대하는 일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매사에 자기의 뜻을 관철하고 있다. 그와 상대하는 사람은 최면술에 걸린 듯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그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만다.
그런데 CEO는 이와 같은 일에는 전혀 비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나마 비결이라고 굳이 말할 게 있다면 ‘상대의 심정이 되어 보는 일’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상대의 의견에 반대하고 싶을 때는
무조건 '반대입니다'라고 하지 않는다.
우선 ‘~의 의견에도 일리는 있군.' 하고 말한다.
이렇게 '~의 의견도 일리가 있군'하고
인정해 주면
상대는 경계심을 풀고 마음을 연다.
그렇게 되면 이쪽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마음이 생긴다. 그런 때를 노려 '그런데 이런 견해도 있는데 어떨까?' 하고 부드럽게 동의를 구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상대는 저항감 없이 이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자기도 처음부터 그런 의견이었던 것처럼 생각해 버리는 일마저 있다고 한다.
만약 상대의 의견에 대해 ‘절대 반대야.’, '그건 틀린 생각이야'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상대는 곧 몸을 도사리고 반박할 논리를 찾는 데 혈안이 될 것이다. 그것은 뜻밖의 역효과를 초래한다. 언뜻 생각하면 CEO의 인품과 권모술수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상대의 심리에 입각해 무리 없이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는 점에선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측면에서 본다면 권모술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도 있다.
'상황에 즉응(卽應)하여, 상대가 자발적으로 따르도록 원격 조작함으로써 강제력에 의거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다.' 즉 이는 지혜의 승부인 것이다. 그래서 물리적인 힘을 갖지 않은 자라도 강한 상대를 함락시킬 수 있다. 그야말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수법인 것이다.
지금은 가공할 만한 밀집 사회이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쳐 가면서 살아가야만 한다. 권모술수는 이 복잡한 현대 사회의 안전 운전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러시아워의 큰길을 안전하게 운전하려면 그만한 테크닉이 필요하다. 단지 자기의 차를 마음대로 움직이면 좋다는 게 아니다. 앞을 잘 보고 주위의 차에 신경을 써서 충돌 사고를 일으키지 않고 무리 없이 더구나 빨리 목적지에 닿아야 한다.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베테랑 운전사쯤 되면 자기 차를 잘 운전할 뿐 아니라 주위의 차도 교묘히 컨트롤할 것이다. 다른 차 운전자의 심정까지 알아차려 이를 제어하는 것이다.
이렇듯 세력 투쟁이 범람하는 사회를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그만한 지혜가 필요하다. 누구와 손을 잡고 누구와 싸울 것인가. 경쟁 상대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그러한 일 또한 권모술수에 더해진 과제이다. 이 같은 지혜는 젖먹이 시절에 이미 인간에게 갖추어진다. 어린이에게 연년생인 동생이나 누이라도 있다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지 않는가. 어머니를 독점하려고 깜찍스러운 꾀를 낸다. 좀 커서 이웃의 아이들과도 놀기 시작하고 유치원에라도 가게 되면 어린이들 사이에도 친구와 적이 생기고 손을 잡거나 갈라지고 한다. 어쨌든 자기의 입장에 유리하게끔 힘 관계의 공작을 한다. 여기에는 이미 권모술수의 싹이 존재한다. 이 점은 세계 각국을 날아다니며 무기를 팔고 사는 로비스트들이나, 유치원 마당에서 개구쟁이 노릇을 하는 어린아이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권모술수는
방어를 위해 쓰일 뿐만 아니라
공격에도 쓰일 수 있다.
가공할 만한 무기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사용자나 사용목적이 문제가 된다.
유학자의 입장에 선<설원>은 자못 수신교과서답게 '무릇 권모에는 정사(正邪)가 있다. 군자의 권모는 바르며 소인의 그것은 그르다.'하고 풀이하지만 뭐 구태여 이런 변명을 할 필요는 없다. 누가 쓰든 권모는 권모이다. 다만 권모의 사용자가 양성이냐 음성이냐에 따라 커다란 차이가 생긴다. '무릇 권모에 양과 음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목적이 훌륭하더라도 음흉한 방법을 쓰게 되면 본인이나 주위의 사람이 음울한 심정에 빠지고 만다. 그런데 양성적으로 사용하면 설사 속았더라도 뒷맛이 나쁘지 않다. 정치가 중에는 흔히 애교 있는 책사가 많은데 바로 이 경우이다. 어차피 사용하려면 양성적으로 쓰는 편이 세상을 위해서나 자기를 위해서 도움이 된다.
동양의 권모술
중국의 권모술수를 낳은 역사적인 배경과 문헌에 관해 살펴보자.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기원전 8세기~기원전 3세기)는 중국사적으로 뿐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격동기였다. 사회적으로는 노예제로부터 봉건제로의 이행기였고, 정치적으로는 70여 개의 나라들이 병탄(倂呑)되어 마침내 진 제국이라는 통일국가가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청동기시대를 거쳐 철기시대가 도래하여 농경의 방법은 물론 전쟁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사상적으로는
서구사회가 여전히 신을 중심으로
사고한 데에 반해
중국에서는 신 중심의 세계에서
인간 중심으로 사고하는
사유의 역사가 태동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배경으로 하여 자연히 인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번성하게 되었고, 노자․장자․공자․맹자․묵자․순자․한비자․손자 등등 가지각색의 사상가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한편 이 같은 사상의 개화와 병행하여 실제적인 정치기술이 발달했다. 그것을 뒷받침한 것이 세객(說客)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재상, 대신을 꿈꾸며 각국을 찾아다녔고 정책을 내놓았다. 즉 직업적 정치컨설턴트로서, 권모술수는 그들의 유력한 무기였다.
단, 이는 논리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기술이었고 실학이었기 때문에 저작으로써 체계적인 형태로 전해지고 있지는 않다. 다행히 '사화'로서 그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는데 우린 그 속에서 그들의 권모술수를 엿볼 수 있다. <사기>, <전국책>, <설원>이 대표적이다. 이 역사서들의 공통점은 인물중심의 기록이며, 거기에는 온갖 유형의 인간형과 인간의 심리사가 생사 투쟁으로 얽혀 있다.
서양의 권모술
중국을 원조로 하는 동양식 권모술수와 곧잘 비유되는 것이 마키아벨리즘이다. 이는 서구식 권모술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그 공통점과 차이는 무엇일까? 마키아벨리즘이란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의 이론을 말한다. 그는 '인간은 본래 사악하다'라고 전제하고 그런 민중의 지배를 위한 군주의 통치방법론을 피력하였다.
그는<군주론>제7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의를 지켜 책략을 쓰지 않고 성실하게 정치하는 군주는 칭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실제는 신의보다는 책략을 사용하여 사람을 속인 군주 쪽이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고 있다. 군주는 필요에 따라 짐승의 방법과 인간의 방법을 병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짐승의 방법을 취할 경우엔 여우나 사자에게서 배우는 것이 좋다. 즉 덫을 간파하는 여우의 교활과 늑대를 쓰러뜨리는 사자의 힘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책략에 의해 사람을 지배한다. 이것은 중국의 권모술수 중에서도 특히 한비자의 이론과 일치되는 점이 많아 흔히 비교된다. 물론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책략과 중국식의 권모술수와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지만, 그 점을 일단 덮어두기로 하고 마키아벨리의 배경과 사상을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14세기 말부터 16세기에 걸쳐 이탈리아는 여러 작은 나라로 쪼개지는 격동기를 맞고 있었다. 밀라노․나폴리 등의 군주국, 피렌체․제노바․베네치아 등의 도시국가가 대립하며 싸움을 거듭했고, 북쪽에서는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 등이 침을 흘리고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도시 국가 피렌체의 소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관리가 되었다. 그는 멸망의 위기에 놓인 피렌체가 존속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고 많은 저작을 집필하기도 했다. 특히 고대 로마 이래의 지배자들을 연구하여 통치술을 내놓았다. 그것이 그 유명한 <군주론>이었고 앞서 인용한 일절이 그 바탕인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을 믿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이란
애정보다도 이해로 움직이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군주론> 제17장에서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은 빨리 잊어도, 재산의 손실은 좀처럼 잊지 않는 법이다.'라고 극언하고 있다. 이것은 다음의 <로마사론> 제1부 제3장에서도 보인다. '인간은 모두 사악한 것으로서 주위의 제약만 없다면 언제든지 사악한 천성을 발휘하려 든다.' 그래서 인간을 지배하는 데는 애정보다도 잔혹성이 필요하게 된다고 <군주론> 제7장에서 거듭 주장한다.
'군주는 신하를 단결시키고 충성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 잔혹하다는 악평을 개의치 말아야 한다. 은정적(恩情的)이면 오히려 혼란 상태를 부르고, 마침내는 살육이나 약탈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한 군주보다는 잔혹한 군주인 편이 낫다. 잔혹한 군주는 특정의 인간을 해칠 뿐이지만, 은정적인 군주는 국민 전체를 해치게 되기 때문이다.'
냉정한 통치술이 여기서 생겨난다. 또 <로마사론> 제1부 제44장에서 '자기의 본심을 드러내선 안 된다. 목적을 이루기까지는 어떠한 수단이라도 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라고 방법론을 제시하며, <군주론> 제10장에서는 매우 구체화하고 있다. '군주가 경멸되는 요소는 뜬마음․경솔․무기력․주저함에 지배당하는 경우이다……. 신하에 대해서 군주는 자기의 결정을 절대로 철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고, 속일 수 없다고 믿게끔 하는 일이 중요하다.'
<로마사론> 제1부 제43장에서 그는 '민중을 조종하는 비결은 커다란 희망과 대담한 약속을 해 주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군주론> 제20장에서는 '신뢰하고 치밀한 신하보다도 일찍이 적대하고 그 악인성을 행동으로 시정하려 하는 신하가 쓸모가 있다'고 하여 '신하론'에까지 확대시킨다.
<로마사론> 제3부 제6장에는 음모를 예방하기 위한 혜안이 엿보인다. '음모를 방지하고자 한다면, 일찍이 배척했던 신하보다도 오히려 총애했던 신하를 경계하라. 그러한 신하 편이 음모의 기회가 많은 것이다.'
이상의 인용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마키아벨리즘은 철저한 인간불신에 입각한 통치술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의 마키아벨리 한비자
마키아벨리의 주장과 배경은 놀랄 만큼 중국의 한비자와 닮아 있다. 물론 한비자는 그보다 1천 7백 년 정도 전의 인물이었고 역사적 조건도 매우 달랐다. 기실 한비자도 전국 시대라는 대립 항쟁이 소용돌이치는 격동기에 소국 한(韓)에서 태어났고, 대국 진나라에 의해 멸망의 위기에 놓인 조국을 어떻게든지 지키려고 했다. 그러한 점에서는 마키아벨리와 매우 비슷하다. 그 때문에 정치를 도덕에서 떼어내어 혈연적인 귀족과 중신의 간섭을 막고 합리적인 체제에 의한 지배권을 확립하자는 주장까지 일치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군주는 사람을 믿어선 안 된다.'고 약속이나 한 듯 한비자와 마키아벨리는 같은 말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군주가 본성을 드러내면 신하에게 이용된다.'는
한비자의 말은
'목적을 이룩하기까지 군주는
본심을 드러내선 안 된다.'는
마키아벨리의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일치된 정치론에는 다만 놀랄 따름이다. 또한 한비자의 저작이 유학자에 의해 이단의 서(書)로 배척되었고, 마키아벨리의 저서가 교회 관계자에 의해 악마의 서라고 지탄을 받았던 것은 우연한 일치가 아니다. 그들은 일치된 사상으로 각기 공통된 운명을 걸어왔다. 그리하여 겉으로는 악서라고 공격되면서도 은밀히 읽히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유사성을 가지면서도 사실 두 사람에 의해 대표되는 동서의 권모술수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중국 고대의 권모술수가 복안적이고 초점 이동식 관점인데 반하여, 서구의 그것은 단안적이고 초점도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전자는 애매성으로 인간적인 여유가 있으나 후자는 기계적이고 냉엄하다고나 할까.
최근 들어 중국인을 향해 ‘속마음을 잘 알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중국인들은 온갖 것을 이면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선악이란 것을 생각해 보더라도,, 인간에는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세한 것은 후설하겠지만, 악인도 착한 일을 하고 선인도 악한 일을 한다. 선과 악의 상호 전환은 까다로운 절차 없이 부드럽게 이행된다. 그래서 똑같이 사람을 믿지 말라고 하더라도, 한비자의 경우는 선악 어느 쪽이든 사람을 고정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며, 마키아벨리의 경우는 사람 그 자체를 믿지 말라는 것이다. 악인은 어쨌든 악인이란 것이다.
본래 서구적 사고의 특성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의 특성이 강한 반면 동양적 사고의 특성은 '이것도 저것도' 식의 종합적 특성이 강하다. 과학을 발달시킨 것은 전자이지만, 인간의 부조리와 모순을 깊이 있게 성찰해 내는 힘은 후자가 연륜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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