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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연재소설_1987’ 젊음의 기원_우리들의 반독재 청춘 느와르_02. 구로구청_87년 12월 16일 오전 10시

형수오빠 2024. 10. 21. 18:37

1987’ 젊음의 기원

우리들의 반독재 청춘 느와르

1987년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 

서울의 구로구청에서 벌어진

2박 3일 간의 반독재 청춘 느와르!   

사회 곳곳에 넓고 깊게 침투한 군부독재의 밀정들과 

학생운동 비밀 조직 사이의 숨막히는

혈투와 그 비극의 서정들!

 

2. 구로구청_12월 16일 오전 10시

 

영하 5도의 추운 날씨였다. 아침 일찍부터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의 행렬이 구로구청 현관에서 시작해 계단을 따라 3층에 있는 투표장까지 이어졌다. 공정선거감시단이라는 글귀가 박힌 완장을 찬 봉사단원들이 곳곳에서 질서 유지와 안내를 맡고 있었다. 구청 현관 입구에서 오륙십 미터쯤 떨어진 큰 길가의 정문에서는 또다른 한 무리의 감시단원들이 경비원과 함께 청사로 진입하는 차량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날은 대통령 선거일이라 구청 안으로 출입이 가능한 차량은 정해져 있었다.

“통과! …… 어이 스토옵!’

1톤 트럭 한 대가 정문을 향해 들어서자 감시단 완장을 찬 사내가 트럭 앞을 가로막았다. 

“어떻게 오셨으예? 차에 방문 표시가 읎네예?”

“수고하십니다. 선관위원님들 드실 간식 배달입니다.”

야구 모자를 쓰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운전사가 차창으로 고개를 내민 채 말했다.

“간식예? 무슨 간식인데예?”

운전사는 순간 조수석에 앉은 제빵사 복장을 사내를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대답했다.

“우유랑 빵입니다.”

“그래예?”

완장을 찬 사내는 방문 허가 차량 리스트를 살피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근데, 오늘 출입 차량 목록엔 없는 차다 아입니꺼, 일단 차를 저쪽으로 대이소. 저쪽으로.”

운전석의 사내는 조수석의 사내와 긴장된 눈빛을 주고받으며 사내가 안내하는 쪽으로 차를 몰았다.

“여기 스토옵! 납품증 있으면 좀 보여 주이소. 선관위에서 주문한 거 맞아예?”

“저기, 그게 사실은, 선관위가 아니라 구청장님이 직접 자비로 주문하신 겁니다.”

“구청장님이예? 그럼 일단 시동부터 끄고 짐칸 덮개 좀 열어 보이소.”

운전사는 고분고분 차에서 내려 트럭의 짐칸을 덮고 있는 비닐 천막을 반쯤 걷어 올렸다. 완장을 찬 사내의 눈에 우유팩과 투명 비닐에 낱개로 포장된 빵들이 담긴 플라스틱 상자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게 보였다. 사내가 운전사에게 천막을 더 걷어 달라고 말을 하려는 찰라였다. 갑자기 조수석에 앉아 있던 제빵사 복장을 한 사내가 빵과 우유가 가득 든 비닐 봉투를 들고 차에서 내려 그 감시단원 앞을 가로막았다.

“특별히 따로 준비해 둔 겁니다. 이거 좀 드시면서 하시죠. 날도 추운데 속이라도 든든해야죠?”

양 손에 덥석 두 개의 봉지를 받아 든 감시단원은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트럭은 현관 앞에 주차를 마쳤고 감시단원은 빵과 우유가 든 비닐 봉투를 양손에 들고 정문 경비실 쪽으로 향했다. 추위를 피해 난로가 있는 정문 경비실에서 몸을 녹이던 사내들이 갑자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따 우리 몫도 제대로 챙겨오긴 해부렀네 그려? 웬 빵이랑 우유다여?”

“하이고 마, 구청장이 한 번 더 해쳐 묵을라나 봅니데이, 빵이랑 우유를 다 사 보냈다 아입니꺼.”

그때 경비실 안의 야전 침대에서 누워 있던 경비원 한 분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으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라구유? 빵 차는 발써 들어갔는디?”

“뭐라꼬예?!”

“봉고차였는디? 직접 뒷문 열어 확인까지 했구먼!”

“에잇 아이씨도, 이건 구청장이 따로 시킨 거라 안 합니꺼.”

“그래유? 앗따 그려서 우덜 꺼 까지 챙겨줬나유?”

어두컴컴한 11월 중순의 새벽부터 시작되는 투표소의 업무로 경비원들도 피곤한 터였다. 자원봉사자인 감시단원들보다는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경비실 직원들은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만 따박따박 수행하면 큰 탈이 없어서인지 오히려 더 융통성이 있어 보였다.

어느덧 노란 햇살이 구청 건물을 포근하게 감싸기 시작하는 시각이었다. 청사 건물 현관 위로 동그란 벽시계가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시각에 방문이 예정된 차량은 아예 없었다. 청사 내 교통 통제를 맡은 감시단원들은 정문 수위실 담벼락 밑에 모여 철제통에 군불을 피워 놓고 담배를 나눠피웠다. 

그 시각 구청 건물 3층에 있는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은 의외로 한산한 분위기였다. 빵과 우유가 든 상자들은 한 선관위원의 안내를 받아 사무실 안쪽에 따로 마련된 선관위원실로 옮겨졌다. 방 안에는 두 명의 직원이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배달을 온 운전사와 제빵사 복장의 사내는 플라스틱 빵 상자가 들어 갈 만 한 크기의 종이 박스에 철제상자를 넣고 그 위로 플라스틱 상자를 포개어 가린 채 직원들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렸다. 선관위사무실 직원이 수화기를 들었고 누군가에게 준비를 마쳤다고 보고하자, 곁에 서 있던 운전수와 제빵사 복장의 사내가 목례를 하고는 종이 박스를 들쳐 업고 선관위 사무실을 나섰다. 그들이  2층 계단을 반쯤 내려왔을 때 한 여성 감시단원의 눈에 이상한 점이 포착되었다. 분명히 그들은 계단을 오를 때 플라스틱 빵 상자를 들고 갔었는데, 내려 올 땐 왜 그 상자보다 큰 종이박스를 들고 내려올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한 한 여성 감시단원은 그들을 물끄러미 처다 보며 몇 초 동안 생각을 하다 이내 몸을 휙 돌리고 말했다. 

“저기요! 잠깐만요!!”

박스를 들쳐 업은 한 사내가 멈칫거리며 발을 헛딛자 등허리에 걸쳐있던 박스가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사내들은 당황하여 재빨리 종이박스를 다시 들쳐 업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여성 감시단원은 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들이 1층 현관 로비에 발을 딛는 순간 완장에 달려 있던 호루라기를 있는 힘껏 불기 시작했다.

1층 현관을 나온 운전수와 제빵사 복장의 사내가 트럭의 짐칸에 종이박스를 던져 놓는 순간 현관문을 박차고 나온 여성 감시단원은 정문 쪽에 있는 한 무리의 감시단원들을 향해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한 손으로는 1톤 트럭을 가리켰다. 정문 수위실 담벼락에서 드럼통 앞에 모여 불을 쬐며 담배를 피던 사내들이 호루라기 소리를 듣자마자 트럭이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여성 감시단원은 달려 오는 가장 먼저 달려오는 감시단원에게 종이박스를 연신 외쳤다. 

이미 시동이 걸린 트럭이 검은 연기를 킬킬 토해내며 클러치에서 발을 떼고 전진하려던 순간이었다. 달려 오던 온 한 감시단원이 운전석의 반쯤 열린 창문을 덥썩 잡았다. 

“저기요! 잠깐만요 보입시데이!

갑자기 멈춘 트럭의 두 사내와 감시단원 사이에 몇 초간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두 사내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빵 맛있게 드셨습니까?”

“잠시만예. 아까 그 종이박스 좀 다시 확인하입시더!”

감시단원이 짐칸의 박스를 확인하려고 뒤로 이동하는 그 몇 초 사이 트럭이 비호처럼 앞으로 치고 나갔다.

“저 싸람들이 지금 뭐 하는 기고!”

아까 그 여성 단원이 양손을 벌린 채 트럭 앞으로 뛰어들자 급정거한 트럭은 매몰차게 후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상향등을 켠 채 좌회전으로 꺾어 정문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정문! 저 트럭 세워!!”

그들은 소리치며 따라갔다. 정문에서는 차량을 통제하던 감시단원 한 명이 돌진해 오는 차량 앞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트럭은 급정거를 했다.

“안 되겠어. 차를 뒤로 빼. 저쪽이야!”

조수석의 사내가 운전사에게 가리킨 곳은 화단 쪽이었다. 운전사는 차량을 후진시켰다가 왼쪽으로 틀며 화단을 타고 질주했다. 그러나 화단의 끝은 어른 허리 높이의 붉은 벽돌담이 버티고 있었다.

“부숴! 전속력으로!!”

용달차는 순간 굉음을 내며 붉은 벽돌담을 향해 질주하다 정면으로 충돌했다. 붉은 벽돌이 산산이 부서지며 담벼락이 브이자 모양으로 길을 내었으나 트럭의 양쪽 바퀴가 통과하기엔 터무니 없이 좁았다. 용달차의 바퀴가 아스팔트와 마찰해 헛돌면서 고무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사이 감시단원들은 일제히 차량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러다 잡히겠어. 차를 버려!”

차에서 탈출한 두 사람은 무너진 담을 넘어 왼쪽 골목길로 뛰기 시작했다. 두 명의 감시단원이 그들을 쫒아 골목길을 향해 뛰어갔다. 다른 감시단원들은 경황이 없는 표정으로 용달차의 짐칸으로 뛰어 올랐다. 

“대체 이기 뭐꼬?”

감시단원 한 명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열쇠 꾸러미를 떼어 날카로운 열쇠로 상자를 감고 있던 테이프를 찢었다. 그리고 종이상자를 양손으로 벌려 안에 있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얼래? 이건 …… 군 부재자 투표함이잖아?”

“투표함이요?!”

그때 마침 골목길로 추적에 나섰던 두 명이 숨을 헐떡거리며 돌아왔다.

“임마들 못잡았십니더! 일단 차를 압수하고 선관위 사무실에 가서 투표함 확인부터 해야 안 되겠습니꺼?”

일순간 감시단원 중 한 명이 크게 외쳤다.

“부정선겁니다! 투표함 바꿔치기!”

상황을 직감한 공정선거감시단원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각자 역할을 척척 해내기 시작했다. 몇몇은 정문으로 가서 출입구를 바리케이트로 통제했고 건장한 젊은 단원 두 명은 트럭의 짐칸으로 올라가 투표함을 꺼내 놓고 그 위에 등을 맞댄 채 서로 팔을 걸고 투표장을 드나드는 시민들에게 부재자투표함이 불법 반출되는 현장을 덥쳐 증거를 확보했다고 외쳤다.

최초로 호루라기를 불었던 여성 단원은 1층 민원실로 달려가 김대중 후보 측인 평화민주당과 김영삼 후보 측의 민주당사는 물론 기독교방송국에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렸다. 그 사이 나머지 단원들은 건물 3층에 있는 선관위 사무실로 몰려갔다.

이미 사태를 직감했는지 3층의 선관위 사무실은 안에서 꼭 잠겨 있었다. 마침 구로구 공정선거감시단장이 도착했다. 감시단장은 직접 철제문을 두드렸다.

“저는 구로구 을 투표소 공정선거감시단장입니다. 선관위원 안에 계세요? 문을 왜 잠근 겁니까! 지금 당장 문을 열지 않으면 강제 개문합니다.”

그래도 안에서는 인기척조차 없었다. 감시단장은 안되겠다는 뒤를 지키던 다른 감시단원들을 처다 보았다. 문 앞에는 투표를 마친 시민 수십 명이 합세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한 청년단원이 소화기를 들고 와서 철제문의 손잡이를 직각으로 내려치자 단번에 손잡이가 나무토막처럼 잘려나갔다. 문이 활짝 열리자 분주히 짐을 정리하던 선관위사무실 직원들이 화석처럼 굳은 표정으로 일제히 출입구를 처다 보았다.

“선관위원장님 어디계십니까!”

직원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누구 하나 선뜻 말을 하지 못했다. 그때 마침 방문이 열리더니 선관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입니까. 여기가 어디라고 강제로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건가요?”

감시단장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위원장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안에서 문은 왜 잠그신 겁니까?”

“그거야 밖에서 소란이 있는 것 같아 투표함 보호 차원에서 시건 장치를 지시한 건데요? 그 정도는 제 권한으로 가능합니다만 대체 무슨 일인데 이렇게 문까지 부숩니까!”

그 순간 감시단원 중 한 명이 열린 문틈 사이로 뭔가를 목격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동작 그만! 당신들 그거 뭐야. 움직이지 마!”

그는 순식간에 선관위원장이 나왔던 방으로 뛰어들었다.

“여기 왜 투표용지가 있는 거죠?”

방 안의 선관위 직원은 묵묵부답이었다.

“왜 기호 1번만 찍힌 투표용지 다발이 여기 있는 겁니까?”

두 눈으로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일제히 탄식을 쏟아내었다. 감시단장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았다. 기호 1번이 찍힌 투표용지가 수백 장씩 묶인 다발이 수십 개, 빈 투표용지 천여 장, 손장갑에 뭍은 아직 마르지 않은 빨간 인주의 흔적을 확인한 감시단장은 사람들에게 증거품을 번쩍 들어 보였다.

“이 선거는 무횹니다!!”

현장은 순식간에 분노의 성토장이 되었다. 감시단원들과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행동을 같이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선관위원들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방 안으로 몰아넣었다. 누군가 불법 밀반출한 군 부재자 투표함을 부정선거 증거물로 사수해야 한다고 외쳤다.

잠시 후 갑자기 사무실 안에 있는 전화기들이 불에 댄 듯 울어댔다. 책상 위에 있던 전화기마다 카랑카랑한 벨소리가 울려대자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시민들은 그 수화기로 자신들이 방금 목격한 일들을  그대로 전했다. 그들은 전화가 온 곳을 메모해 감시단원들에게 전달했다. 시민들은 일제히 창가로 가서 창문을 활짝 열었다. 누군가 플라스틱 메가폰으로 창밖을 향해 외쳤다.

“여기 부정선거 증거물이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이 선거는 완전 무횹니다!!”

구로구청 앞마당에는 순식간에 수백 명의 시민들이 모여 트럭을 에워싸고 있었다. 공정선거감시단원 완장을 찬 두 청년이 용달차의 짐칸 위에서 서로 등을 맞댄 채 군 부재자투표함 위에 걸터 앉아 양팔을 뒤로 걸고 결연한 눈빛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