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인서적 9.

형수오빠 2017. 2. 7. 17:59

<송인서적> 9.


송인서적은 왜 직원들에게 줄 급여 4억(3개월분)과 퇴직금 6억(3년분)을 주지 못했을까요? 정말 줄 수 없었을까요? 아니면 줄 수 있었음에도 '경영진'의 판단으로 인해 '줄 수 없게 된 것'일까요?


채권단 전체회의에서 '회생'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졸지에 일터를 잃고 급여도 떼인 채 퇴직금까지 못받을 입장에 처한 송인서적 직원들을 생각해 봅니다. 기업 경영자의 판단 착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 있는지를 돌아보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겠죠.


팩트 먼저 짚어볼까요? 
1월 2일 오전 송인은 출판사에 정상 주문을 하고 출판사는 정상 출고를 합니다. 송인물류창고에서는 오후에 지역서점으로 도서를 정상 배송합니다. 오후 3시까지도 직원들은 별 동요없이 묵묵히 제 할일을 합니다. 오후 5시, 경영진은 부도를 결정합니다!


경영진은 '최종부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백방으로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해됩니다. 100% 인정합니다. 경영진은 아마 발에 불이 나도록 마지막까지 부도를 막기 위해 자금을 융통하러 다녔겠지요. 최선을 다한 것으로 인정해 봅니다. 그런데, 부도를 결정하는 시점에 경영진은 아둔한 판단을 저질러 버립니다.


경영진은 부도를 막기 위해 준비한 돈으로 무엇을 했을까요?
그들은 말했죠. '어음막을 돈으로 직원에게 빌린 부채랑 서점에서 빌린 부채를 갚았다.'고요. 
아, '채권자'의 '빚'을 갚았군요. 그게 얼마였든, 경영진은 1. 부도를 결정한 뒤 2.보유 현금으로 '채권자에게 부채'를 상환했습니다. 
그리고 송인의 통장은 거의 텅 비었겠죠.


그런데 경영진은 왜 직원급여와 퇴직금 먼저 갚지 않고 '부채'를 먼저 갚았을까요? '부채'라면 '출판사 부채'도 있는데 말입니다. 한정된 금액이라면, 채권자에게도 순위를 두어야 하는 게 법인경영의 원칙이 아닐까요.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상법상 법인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밀린 급여+퇴직금도 '법인이 갚아야할 부채'이고 직원에게 빌린돈+서점에게 빌린돈도 '법인이 갚아야 할 부채'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여기까진 동일한 '부채' 성격을 가진터라, 법인이 어떤 걸 먼저 갚든 상법상 주식회사의 사적자치 원리에 따라, 경영진의 고유권한처럼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기업회계 관점에서 보면 이 동일한 '부채'에도 '상환'의 순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재무제표의 <손익계산서>를 보면, 1년 동안 기업이 벌어들인 '매출'에서 '원가'를 빼고 남는 게 '매출총이익'입니다. 이 매출총이익에서 '판매비 및 관리비'를 계정별로 빼는 데, 그 비용차감의 1순위가 '직원급여'입니다.


즉, 법인이 1년 간 장사해서 매출을 올리면 거기서 원가빼고 남는 매출총이익에서 가장 먼저 떼어줘야할 1순위 대상자는 '직원'입니다. 그래서 판관비 계정의 첫번째가 '직원급여'인데, 이는 직원이 가장 먼저 가져가게 해야한다는 의미죠. 두번째는 당연히 '직원퇴직금'입니다. 그 다음은? '직원들을 위한 복리후생비'.....이런 식으로 '직원'을 우선시하게 되어 있지요. 그렇게 손익계산서의 판관비를 순서대로 다 빼면, 거기서 남는 게 '영업이익'입니다. 


채권자는 이 영업이익이 생길 때, 2순위로 '이자'를 떼어갑니다. 기업의 이자비용 계정이 영업이익 이후의 계정인 '영업외비용'에 들어 있는 건 '채권자 들아, 직원들 먼저 챙겨주고 나서 영업이익이 남으면 니들은 그때 이자를 떼어가야 한다'고 하는 기업회계기준의 준용 사항이란 것이죠.


직원, 채권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가가 세금을 떼어가는 것입니다. 국가는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해 도로도 놓는 등 기업의 사업을 간접적으로 도우므로, 세금을 떼어가는 거구요.


이렇게 법인은 3가지 이익계정에서 직원(급여+퇴직금) / 채권자 / 국가 순으로 이익을 떼어주는데, 기업회계 관점에서 그 순서가 매우 중요한 경영판단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죠.


1순위로 매출총이익에서 '직원'이 급여와 퇴직금을
2순위로 영업이익에서 '채권자'가 '이자'를
3순위로 세전이익에서 '국가'가 세금을....떼어가는 게 정도 경영의 순리입니다.


여러분이 송인 경영진이라면 어땠을까요? 부도를 막기 위해 준비한 현금으로 직원급여와 퇴직금을 먼저 주고 싶을까요, 아니면 일부 직원에게 빌린 빚과 서점에게 빌린 빚을 먼저 갚고 싶었을까요.


굳이 근로기준법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을 들먹이지 않고 애써 기업회계기준의 준용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정유년 신년 벽부터 일터를 잃고 힘겨워할 직원들을 한 번이라도 생각했었다면 어땠을까요? .


문제는 송인이 '회생'을 한다해도, 아직 등기부상 법인은 살아 있어 2017년 3월 결산 신고를 해야 할 것이고, 또 부도로 인해 세간의 화제가 되어 있는 법인이라서 세무당국이 요주의하고 있을텐데, 예컨데 부도직전 자금을 '채권자'에게 갚았다는 걸 세무당국이 '소명'하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경영진은 당연히 세무당국에 법인자금의 유출에 관해 소명을 해야하겠죠? 
'직원에게 빌린 자금을 갚았다면, 법인이 직원에게 돈을 빌릴 때 작성한 <금전대차계약서>가 있어야 할 것이고, 계약서에는 적정이자의 지급 약정이 적혀 있어야 할 것이고, 법인은 매월 직원에게 이자를 지급한 흔적이 법인통장에 찍혀 있어야 할 것이겠죠. 만일 서점에게 법인이 돈을 빌렸다면, 그 역시 <금전대차계약서>가 있어야 하고, 매월 서점의 통장으로 법인이 이자를 지급한 흔적이 있어야하겠지요. 물론 빌린돈이 법인 통장으로 찍혀 들어온 증거도 명백해야 하구요.


그래야 세무당국은 부도직전 법인자금의 유출에 대해 '경영진에게 세금폭탄'을 부과하지 않을겁니다.

만일 송인의 경영진이 '소명'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세법상 법인 통장에서 유출된 돈의 액수만큼 '대표이사가 가져간 것으로 보아 장부상 가지급금으로 계상'하고 판례상 '인정상여' 처분(상여금으로 과세)하여, 최고세율로 소득세를 추징할 확률이 큽니다.

가급적 이런 일은 방지하고 또 없어야 하겠지요. 이와 관련해 법인세 폭탄도 생길지 모르나, 그건 다음 기회에 생각해 보는 걸로 해봅니다.


직원들의 피해도 적지 않아, 바람이 찰수록 마음은 쓰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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